사용자의 머릿속, 인지라는 빙산 — 선택집중·연관짓기·심성모형
사용자 경험은 결국 사용자의 머릿속에서 완성됩니다. 인지를 빙산에 비유하며, 그 아래에서 작동하는 선택집중·연관짓기·심성모형이라는 세 가지 인지처리 방식을 살펴봅니다.
인지(Cognition)는 우리가 외부의 자극 및 정보를 받아들여 처리하는 정신적인 총체적 공정을 말합니다. 단순히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감각의 영역에 그치지 않고, 그렇게 받아들인 자극을 해석하고, 분류하고, 기억하고, 다시 꺼내어 활용하는 일련의 과정 전체를 아우르는 개념입니다.
우리는 외부의 어떤 사물이나 환경을 접할 때 그로부터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모든 표상들을 통해 정보를 얻습니다. 그리고 이들 중 더러는 무의식적으로 걸러내 버리고, 일부는 선택적으로 받아들여 자신만의 의미로 구성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대상에 대해 이렇게 형성된 의미의 총합이 곧 그 대상에 대한 사용자 경험이 된다는 점입니다. 같은 제품을 사용하더라도 사람마다 다른 경험을 하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으며, 따라서 UX디자인 분야에서 이 인지에 대한 이해는 단순한 배경지식이 아니라 디자인의 근본적인 출발점으로서 중요합니다.
인지라는 빙산
인간의 인지는 흔히 빙산으로 은유되곤 합니다.
진부한 은유이지만, 무언가 수면 아래에 거대한 것이 숨어있을 때 우리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표현을 즐겨 씁니다. 인간의 인지 역시 마찬가지여서, 이 빙산의 비유는 인지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꽤 유용한 틀을 제공합니다. 빙산이 수면 위로 드러낸 부분은 전체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듯, 겉으로 보이는 의식(conscious)의 영역은 인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생각보다 작습니다. 오히려 수면 아래 숨어있는 무의식(subconscious)의 영역이 훨씬 더 크고 광범위하며, 우리의 판단과 반응에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그리고 수면 위의 빙산만 관찰해서는 그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정확히 가늠하기 어렵듯이, 사용자의 의식적인 반응만을 관찰해서는 그 이면에 작용하는 무의식의 메커니즘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 은유는 인지의 특성을 잘 설명합니다.
더 나아가, 빙산의 수면 아래 숨은 부분에 거대한 타이타닉 호가 부딪혀 사고가 발생했듯이, 사용자 경험 역시 디자이너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사용자의 무의식적 인지 패턴에 부딪혀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도 유사합니다. 겉으로 보기에 아무 문제없어 보이는 디자인이 사용자에게 불편함이나 혼란을 야기하는 경우가 바로 이런 맥락에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해사들이 소나나 수중 탐사 같은 다양한 수단을 활용해 빙산의 숨은 면을 알아내고자 하듯, UX디자인을 하는 디자이너들 또한 이 인지라는 빙산의 전체 모습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용자 리서치, 행동 분석, 심리학적 이론 등 여러 수단을 활용하여 목표로 하는 사용자들이 어떤 인지 과정을 통해 경험을 형성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 과정의 어느 지점에서 어떤 방식으로 개입하고 조정해야 더 나은 경험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연구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심도 있게 인지공학의 깊은 곳까지 파고들자면 너무도 버겁고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지에 대한 이해를 아예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우선은 인지의 핵심적인 메커니즘 몇 가지를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해보겠습니다.
경험을 이루는 세 가지 인지처리
외부의 사물이 감각기관을 통해 인지되고, 이것이 다시 기억으로 저장되어, 그 기억이 새로운 정보를 처리하는 데 다시 영향을 주는 순환적 구조로 보았을 때, 이 과정에서 크게 세 가지의 주요한 인지 처리가 발생합니다. 바로 선택집중(Selective Attention), 연관짓기(Chunking), 그리고 심성모형(Mental Model)입니다.
이 세 가지는 각각 정보를 받아들이는 입구에서, 정보를 조직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정보를 해석하고 활용하는 단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선택집중(Selective Attention)
인지의 첫 번째 관문은 선택집중입니다. 우리는 카메라나 녹음기와 달리 감각기관에 잡히는 모든 정보를 빠짐없이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실제로는 카메라나 녹음기도 중심부와 주변부에서의 정보량이 달라집니다. 다만 이것은 단순히 거리로 인한 물리적 한계인 반면, 인간의 선택집중은 물리적인 영역을 넘어 인지적으로 필요 없다고 여겨지는 정보를 삭제하는 수준으로 이뤄진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의 인지 자원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특정한 부분에 집중을 기울일 때 그 영역에서 가장 밀도 있는 정보를 받아들이게 되고, 그 집중의 영역 바깥에서는 정보의 수용성이 급격히 낮아집니다. 마치 손전등으로 어두운 방을 비추는 것처럼, 빛이 닿는 곳은 선명하게 보이지만 나머지 영역은 어둠 속에 남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 무엇에 집중할 것인지를 이끄는 요인은 다양한데, 우리가 가진 기호나 관심사, 정보 자체가 지닌 위험도나 긴급성, 그리고 주변의 다른 정보와의 시각적 대비 등이 대표적입니다. 일반적으로 시인성이 높을수록 집중의 선택을 받을 가능성이 높지만, 반드시 그러한 것은 아닙니다. 이 선택에는 개인이 이미 가지고 있는 기존의 기억이나 경험이 깊이 영향을 주기 때문에, 같은 화면을 보더라도 사용자에 따라 어디에 집중하는지, 무엇을 먼저 인지하는지가 상당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연관짓기(Chunking)
선택집중을 통해 걸러진 정보가 우리에게 도달했다고 해서 끝이 아닙니다. 그다음 단계에서 우리의 인지는 또 하나의 중요한 처리를 수행하는데, 바로 받아들인 정보를 의미에 따라 묶어 그 개수를 줄여서 처리하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매우 잘 알려진 ‘법칙’ 중 하나가 매직 넘버 7(Magic Number 7)인데, 인간이 단기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개수가 7개 남짓, 즉 7 플러스마이너스 2개 정도라는 내용입니다. 이 숫자 자체에 대해서는 후속 연구들에서 이견이 많고 실제로는 더 적을 수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여기서 정말 중요한 것은 특정 숫자가 아니라 인간의 단기적 정보 처리 능력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입니다.
그리고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의 인지가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전략이 바로 연관짓기(Chunking)입니다. 즉, 서로 관련 없는 낱개의 정보들을 하나하나 개별적으로 받아들이고 처리하는 데는 막대한 인지 부하(workload)가 요구되거나 아예 처리 자체가 불가능해지지만, 의미적으로 관련 있는 정보들을 하나의 덩어리로 묶어서 처리하면 인지 부하를 크게 줄일 수 있고, 결과적으로 더 많은 양의 정보를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됩니다.
심성모형(Mental Model)
연관짓기가 들어오는 정보를 효율적으로 묶어서 처리하는 과정이라면, 심성모형은 한 발 더 나아가 그 정보들을 하나의 체계적인 구조로 조직화하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축적된 기억과 경험을 바탕으로 특정 대상이나 상황에 대한 정보의 구조체를 만들고, 이후 새로운 정보를 접할 때 이 구조체를 틀로 삼아 정보를 받아들이고 해석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카메라 렌즈라는 대상에 대한 정보의 구조체를 각자 가지고 있습니다. 카메라에 대한 경험이 적은 사람은 동그란 외형과 비친 사물을 투영하는 기본적인 기능 정도에 그칠 수도 있습니다. 반면 사진을 오래 찍어온 사람이라면 조리개의 작동 원리, 셔터 속도와의 관계, 다양한 필터의 효과 등 세부적인 항목까지 그 구조에 풍부하게 포함되어 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총이라는 대상에 대해서도 우리는 각자의 정보 구조체를 가질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구조체에는 방아쇠와 손잡이 같은 기본적인 요소만 있을 수 있고, 더 많은 경험을 가진 사람이라면 가늠자, 안전장치, 탄창 같은 세부 사항들까지 체계적으로 구조화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렌즈와 총 각각에 대해 나름의 정보 구조를 가진 사람이, 렌즈와 총의 형태를 결합한 듯한 낯선 물건을 마주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비록 처음 보는 물건이고 한 번도 써보지 않은 물건이지만, 기존에 가지고 있던 렌즈와 총에 대한 구조가 자동적으로 활성화되면서 이 낯선 물건의 작동 방식과 동작을 놀랍도록 정확하게 가늠할 수 있게 됩니다. 아마도 총의 형태에서 방아쇠를 당기는 동작을, 렌즈의 형태에서 사진을 찍는 기능을 연결지어, 방아쇠를 당기면 겨누어진 대상의 사진이 찍힐 것으로 예상할 것입니다.
이전에 접한 적 없는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유추가 가능한 것은, 우리의 인지가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 놓은 정보의 구조체를 능동적으로 활용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정보의 구조체가 바로 심성모형(Mental Model)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지금까지 살펴본 선택집중·연관짓기·심성모형이라는 세 가지 인지처리 방식이 실제 디자인에 어떤 구체적인 의미를 갖는지, 그리고 심성모형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개념인 어포던스(행동유도성)란 무엇인지를 다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