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X디자인 선언2편

UX디자인은 왜 등장했나 — 소비자에서 사용자로

UX디자인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개념이 아닙니다. 장식에서 상품 기획으로, 다시 사용자의 인지로 — 디자인의 관심이 옮겨온 흐름을 따라가며 'UX디자인'이라는 선언의 배경을 짚습니다.

UX디자인이 기존의 디자인과 무엇이 다른지를 이해하려면, 먼저 디자인이라는 분야가 어떤 흐름 속에서 변화해왔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디자인의 역사를 돌아보는 것은 단순한 회고가 아니라, UX디자인이 왜 등장해야 했는지를 이해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UX디자인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개념이 아닙니다. 산업의 성장과 기술의 발전, 그리고 사회 구조의 변화가 디자인에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숙제를 안겨주었고, 그 숙제에 대한 응답으로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흐름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UX디자인의 본질을 온전히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물산의 풍요: 장식에서 상품의 매력으로

출발점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현대적인 개념의 산업 디자인은 ’공예’에서 출발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산업의 초기 단계에서는 물산이 부족했고, 사람들에게 가장 절실했던 것은 당장의 기능성(유용성)이었습니다. 제품이 본연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는가, 즉 도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가가 다른 무엇보다 중요했던 시기였습니다.

이 때문에 기능공의 작업을 통해 확보되는 기능성이 다른 상위적 경험보다 더 우선시되었고, 디자인이라는 행위는 독립적으로 인식되기보다 기능 구현의 부수적인 영역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디자인의 초기 형태는, 기본적인 기능 이상의 사용 경험을 원하는 일부 상류층을 대상으로 심미적인 가치를 전달하는 장식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쉽게 말해, 기능은 기능공이 담당하고 디자인은 그 위에 아름다움을 입히는 분업 구조였던 셈입니다. 이 초기의 역할 분담은 생각보다 뿌리 깊은 인식을 남겼는데, 지금까지도 ’디자인’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미학이나 고부가가치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상위적 경험’은 UX 피라미드 관점에서의 개념으로, 이 시리즈의 뒤편에서 더 자세히 다룹니다.

그러나 이러한 구도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습니다. 산업이 성숙하고 물산이 풍요로워지면서, 기능성의 충족은 더 이상 차별화 요소가 되지 못했습니다. 대부분의 제품이 기본적인 기능을 충분히 수행하게 되자 소비자들은 자연스럽게 기능성 이상의 경험을 원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소비자 시장은 빠르게 확대되었습니다.

마케팅 측면에서 심미성과 감성이 중요한 지표를 차지하기 시작했으며, 이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기존처럼 ‘기능적으로 만들어진 형태에 사후적으로 장식을 더하는’ 수준으로는 한계가 분명했습니다. 제품의 형태 자체가 처음부터 심미적이고 감성적인 가치를 담아내야 했고, 이를 위해서는 디자인이 공정의 뒷단이 아닌 앞단에서 주도권을 가져야 했습니다. 이에 따라 산업 공정의 순서 자체가 뒤바뀌기 시작합니다. 디자인이 기능공보다 앞서서 형태와 청사진을 제시하고, 기능공은 이 기획에 맞춰 기능을 구현하는 방향으로 변모한 것입니다.

디자인이 더 이상 기능의 부속물이 아니라 제품 기획의 선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된 전환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디자인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매대에서 잘 팔릴 수 있는, 즉 ‘소비자’ 지향적인 방향으로 옮겨졌습니다. 소비자가 무엇에 끌리는지, 어떤 트렌드와 라이프스타일이 시장을 지배하는지를 살피고 이를 선도하는 것이 디자인의 핵심 과업이 된 것입니다.

기술의 발전: 인터페이스가 복잡해지다

이처럼 디자인이 소비자 중심의 기획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마케팅 시점에서의 단발적인 기획, 즉 ’매대 앞에서의 매력’에 머무르던 디자인에 또 한 번의 근본적인 변화가 요구되었는데, 그 변화를 촉발한 것은 사회적 변화, 특히 기술의 급격한 발전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반도체와 집적기술의 발전은 제품의 컨버전스(Convergence) 움직임으로 이어졌습니다. 기존에 개별적으로 분화되어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던 제품들이 하나의 기기 안에 합쳐진, 복합 제품의 등장이었습니다. 카메라, 음악 플레이어, 전화기, 수첩이 각각 존재하던 세상에서 이들이 하나의 기기로 수렴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전의 디버전스(Divergence) 환경에서는 개별 제품의 물리적 형태가 그 기능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었고, 그 연계는 대체로 직관적이었습니다. 카메라는 카메라처럼 생겼고 전화기는 전화기처럼 생겼기 때문에, 형태만 보아도 사용 방법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 기기가 하나로 합쳐진 환경에서는 동일한 인터페이스가 여러 가지 서로 다른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 숙제가 발생했습니다. 그 결과 인터페이스는 불가피하게 중첩되었으며, 이 중첩된 기능 구조를 사용자에게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많은 인지적 단서와 안내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컨버전스의 문제에 더해, RF·블루투스·Wifi 등 무선 기술의 발전과 소프트 키 인터페이스(Soft key Interface)의 확산도 이 변화에 중요하게 작용했습니다. 이전까지 사용자의 환경은 물리적인 선이나 고정된 버튼 등으로 제한되어 있었고, 그 제한은 역설적으로 사용 방식을 명확하게 규정해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무선 기술과 소프트 키가 이 물리적 제약을 해방시키면서, 사용자의 환경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자유로워졌습니다.

문제는 이 자유가 양날의 검이었다는 점입니다. 제공자의 입장에서는 사용자의 행동을 유도하고 예측하기가 훨씬 어려워졌고, 원하는 행동을 이끌어내기 위한 새로운 차원의 노력이 필요해졌습니다. 사용자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떤 부분과 어떻게 인터랙션하면 원하는 기능을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형태적 단서가 모호해졌기 때문에, 이를 감각적으로 인식하고 따라갈 수 있는 사용상의 가이드가 절실해진 것입니다.

즉, 업계 전반에 걸쳐 사용자의 인지 과정과 사용 절차에 대한 보다 면밀한 관찰과 배려가 요구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감각적인 인식과 형태를 전통적으로 담당해오던 디자인이라는 분야는, 바로 이 숙제를 정면으로 받아들이며 비로소 ’소비자’가 아닌 ’사용자’를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스마트폰의 확산은 이 모든 변화의 대표격이자 상징으로 혁신적인 변화를 유도했습니다.

소비자가 아닌 ’사용자’를 보겠다는 선언

이러한 격변의 흐름 속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UX디자인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디자인은 그 이전에도 항상 사용자의 경험을 고민해왔습니다. 그럼에도 ’사용자 경험 디자인(UX Design)’이라는 용어로 이 개념을 기존의 디자인과 명시적으로 분리하는 것은, 일종의 선언이자 관점의 근본적인 이동입니다.

왜냐하면 이전의 디자인이 고민하던 사용자의 경험은 주로 마케팅 관점에서의 ’소비자’로서의 사용자에 국한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제품을 구매하는 순간의 매력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매대에서 경쟁 제품보다 괜찮아 보이는 특질(feature)을 제시하는 것이 핵심이었고, 주전자의 손잡이는 어떤 재질로 할 것인지, 물이 끓을 때 어떤 소리가 나게 할 것인지와 같은 감각적 호소력에 기반한 기획이 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은 물론 중요한 고민이지만, 구매 이후 사용자가 제품과 맺게 되는 지속적인 관계까지 깊이 들여다보는 것과는 성격이 달랐습니다.

반면 사용자 경험 디자인은 이와는 다른 깊이에서 출발합니다. 제품이 구매된 이후, 사용자가 실제로 제품을 사용하는 절차 그 자체를 바라보겠다는 것입니다. 사용의 흐름 속에서 사용자와 동기화(synchronize)되어, 사용자의 인지적 경험 측면에서 문제가 되는 절차는 없는지, 있다면 이를 해소하기 위해 어떤 해결이 필요할지를 탐구하겠다고 선언합니다. 이는 곧, 소비자 관점에서 다루던 수면(surface) 위의 매력을 지나 더 깊이 잠재된 사용자의 인지라는 물속으로 잠수(deep-dive)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형태와 감성을 넘어, 사용자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인지적 과정까지 디자인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전환인 셈입니다.

이 잠수의 깊이를 좀 더 명확히 정의해보겠습니다. 사용자 경험 디자인의 핵심은 사용 환경에의 동기화, 그리고 그 사용 환경에서 벌어지는 인지적 절차와 사건들을 이해하고 이를 의도적으로 조작하는 데 있습니다. 사용자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기대하며, 어떤 순서로 행동하는지를 파악하고 그 흐름에 맞추어 경험을 설계하는 것이 UX디자인의 본질입니다.

이러한 레벨에서 기획이 이뤄진다면, 그것이 어떠한 형태를 취하고 있든 ’UX디자인적이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UX디자인의 방법론을 아무리 충실하게 따랐다고 해도 사용자와 진정으로 공감하고 그들의 인지 과정을 분석하지 못했다면, 이는 도구만 빌려 쓴 것일 뿐 UX디자인으로서 실행되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형식이 아닌 관점이 UX디자인을 규정하는 것입니다.

진보가 아니라, 새로운 관점

다만 여기서 한 가지 균형 잡힌 시각을 덧붙일 필요가 있습니다. 언제나 새로운 것이 정답이고 이전의 것이 오답이라고 볼 수 없듯이, 소비자 관점의 디자인에 비해 UX디자인이 무조건 우월하다고 보는 시각 역시 잘못입니다. 디자인은 언제나 그 프로젝트의 목표와 효율을 따라야 하며, UX디자인은 그러한 맥락에서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때에 채택되면 되는 것입니다.

사용자의 경험과 인지적 흐름에 대한 깊은 숙고가 필요한 프로젝트라면 마땅히 수행해야 하겠지만, 이미 답이 명확한 상황에서 형식적으로 논리를 짜맞추는 흐름은 오히려 위험합니다. 앞서 사용한 잠수의 비유를 이어가자면, 얕은 물에 다이빙하면 몸이 다치는 법입니다. 다이브할 만한 깊은 인지적 배경이 존재하지 않는 프로젝트에서 무리하게 UX디자인 프로세스를 진행하면, 투입된 비용과 시간에 비해 그 결과는 초라할 수밖에 없습니다. UX디자인의 가치는 그것이 적용되는 맥락의 적절성에서 비롯됩니다.

지금까지 UX디자인이 왜 등장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기존의 디자인과 어떤 점에서 다른 관점을 취하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이 다이빙의 대상, 즉 UX디자인이 다루고자 하는 ’경험’이라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요? 그것은 어떤 원리로 형성되며,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하면 원하는 방향으로 조정할 수 있을까요?

UX디자인의 선언은 마쳤으니, 다음 글에서는 그 선언이 겨냥하는 대상 자체 — ’경험’이란 무엇인가로 들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