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X디자인 선언3편

경험이란 무엇인가 — 습득의 과정으로 본 사용자 경험

경험이란 습득의 과정입니다. 일상의 언어와 사전적 정의에서 출발해 인지와 행동, 시퀀스와 비가역성이라는 개념으로 경험이 형성되는 원리를 짚어보고, 그 안에서 UX디자이너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다시 살펴봅니다.

앞서 살펴본 글에서 우리는 소비자 관점이 아닌 사용자 관점에서 공감하고, 그들의 사용 환경 속에 직접 들어가 경험을 개선하겠다는 방향을 분명히 했습니다. 선언이 방향을 정했다면, 이제 그 방향을 따라 실제로 나아가야 할 차례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경험’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그것을 어떻게 조작할 수 있는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이전 글에서 UX디자인을 다이빙에 비유했던 것을 다시 빌려오면, 다이버가 뛰어드는 그 물, 즉 경험은 도도하게 끊임없이 흐르는 강에 대응할 수 있습니다. 강은 다이버의 의지와 무관하게 자신의 방향과 속도로 흘러가며, 그 안에 들어간 다이버는 강의 성질을 온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 강의 성격을 결정짓는 것은 바로 흐름의 원류입니다. 원류가 어디에서 시작되고 어떤 지형을 거치느냐에 따라 경험이라는 강의 수질과 흐름의 방향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경험,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렇다면 경험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이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을 어떻게 주고받는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평소에 경험을 묻거나 답할 때, 어떤 대상에 대해서 ‘어떠했는지’ 또는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곤 합니다. “그 식당 어땠어?”, “새로 산 폰 괜찮아?” 같은 질문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둘은 모두 과거에 대한 질문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아직 겪지 않은 것에 대해 경험을 물을 수는 없으니, 여기서 일단 경험이란 것은 대상에 대해 과거에 발생했던 일들, 즉 상호작용에 대한 어떤 기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을 떠올려보면, 보통 ‘좋다’, ‘나쁘다’ 또는 ‘편하다’, ‘불편하다’, ‘예쁘다’, ‘별로다’ 등 어떤 정서적인 평가에 해당하는 답변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물론 특별히 인상이 강했던 부분에 대해서는 “어디가 어떻게 불편했다”거나 “이런 점이 특히 좋았다”는 식의 분석적인 답변이 추가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일반적인 경우에는 지배적인 소수의 감성이 그 답변의 핵심이 되고, 이후에 덧붙는 말들 역시 대부분 그 감성을 뒷받침하거나 정당화하는 근거로 기능합니다. 우리가 경험을 회상할 때 세밀한 사실관계보다는 전체적인 느낌이 먼저 떠오르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즉, 이러한 관찰을 종합하면 경험은 ’대상에 대해 과거에 발생했던 상호작용에 따른 통합적인 정서의 기억’이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정의는 우리의 일상적인 관찰로부터 귀납적으로 도출한 것입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렇게 경험적으로 내린 정의에 덧붙여 사전적인 정의를 들여다보아도 경험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게 정리됩니다. 사전에서는 경험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ex·pe·ri·ence /ikˈspirēəns/

the process of getting knowledge or skill from doing, seeing, or feeling things 무언가를 하는 것, 보는 것, 또는 느끼는 것으로부터 지식이나 기술을 습득하는 과정

사전적 정의를 우리의 맥락에서 다시 풀어보면, 경험은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지식 또는 기술을 습득하는 과정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이 짧은 정의 안에 UX디자인의 핵심이 압축되어 있는데, 여기서 특히 주목해야 할 키워드는 ’습득’과 ‘과정’ 두 가지입니다. 경험이 단순한 결과물이 아니라 ’습득’이라는 행위를 통해 형성되며, 그것이 하나의 ’과정’으로서 시간 속에서 전개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다시 말해, 이 ’습득의 과정’이야말로 경험을 형성하는 근본 원리가 되는 것입니다.

이 원리를 이해하면 UX디자인이 하는 일의 본질이 보다 선명해집니다. 우리가 UX디자인을 한다는 것은 바로 이 습득의 과정에 개입하고 이를 섬세하게 조작함으로써, 경험이라는 강의 수질과 흐름을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습득’과 ’과정’이 각각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이것이 디자인 실무에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습득의 과정

먼저 ’습득’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습득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정보의 입력, 즉 인지(Cognition)가 됩니다. 우리가 가진 눈, 귀, 코, 피부 등의 감각기관을 통해 대상물의 형태, 색상, 질감, 소리, 냄새 등 다양한 면모에 대한 정보를 받아들이고, 이들을 두뇌 안에서 처리하며 기억으로 저장하는 일련의 과정이 바로 ’습득’일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UX디자이너가 마주하는 근본적인 난제가 등장합니다. 이 인지의 과정은 대부분 사용자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내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현재까지의 기술로는 그것을 직접적으로 관찰하거나 정밀하게 분석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사용자가 제품을 보면서 무엇을 느끼고 어떤 판단을 내리는지, 그 실시간의 인지 과정을 들여다볼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때문에 UX디자인을 수행하는 디자이너는 겉으로 드러나는 사용자의 표면적인 반응을 통해 보이지 않는 내부의 인지 상태를 유추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때, 대상에 대해 사용자가 의식하지 못한 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무의식적인 표상을 우리는 ’행동(Behavior)’이라고 부릅니다. 행동은 인지의 그림자와 같아서, 직접 볼 수 없는 인지를 간접적으로 읽어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창구인 셈입니다.

습득이 경험의 ’무엇’에 해당한다면, ’과정’은 경험의 ’어떻게’에 해당합니다. 이 ’과정’에 대해 살펴보면, 경험이라는 것은 시간적으로는 아주 찰나에 불과한 순간일지라도 그 안에는 반드시 어떤 흐름이 존재합니다. 제품을 처음 대면하고, 사용하고, 보관하거나 휴대하는 등 분석할 수 있는 시퀀스(Sequence)를 통해 경험은 형성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경험조차도 컵을 집어 드는 순간, 입술에 닿는 온도, 한 모금 넘기는 맛, 내려놓는 무게감이라는 시퀀스를 거칩니다.

그리고 시간은 곧 공간을 수반하기 때문에, 경험이라는 것은 아무리 작은 규모일지라도 단위적으로는 분명한 시간적, 공간적인 절차를 통해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절차적 특성은 경험의 개선과 아주 밀접하게 관련되는데, 시퀀스의 어느 지점에서 어떤 변화를 주느냐에 따라 전체 경험의 질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시간과 공간이 갖는 비가역성, 즉 되돌릴 수 없는 성질입니다. 한번 지나간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며, 사용자가 특정 시점에서 받은 인상은 이후의 경험 전체를 물들입니다. 이 비가역성은 경험을 쌓아가는 절차에서 매 순간의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분명하게 암시합니다.

인지와 행동 사이에서 — UX디자이너라는 역할

이제 습득과 과정이라는 두 축을 종합하여 소결해보겠습니다. 경험을 디자인한다는 것은 결국 행동이라는 창구를 통해 사용자의 인지 과정을 관찰하고, 그 관찰로부터 얻은 통찰을 바탕으로 대상물을 디자인함으로써 원하는 방향으로 행동의 변화를 유도하며, 궁극적으로는 인지의 변화를 추구하는 일련의 작업이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보이지 않는 인지를 바꾸기 위해 보이는 행동을 관찰하고, 다시 보이는 대상물을 변화시켜 보이지 않는 인지에 영향을 미치는, 간접적이면서도 정교한 작업인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앞서 ’수면’으로 비유한 사용자의 무의식 경계를 끊임없이 넘나들며 사용자 행동이 원하는 방향으로 조정되고 있는지를 살피고, 사용자와 동기화하고 공감하여 그들의 경험을 추론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결국 UX디자이너는 사용자의 무의식과 대화하는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이처럼 경험 디자인이 인지와 행동이라는 보이지 않는 영역을 다루는 작업이라는 사실은, 자연스럽게 UX디자인에 요구되는 역량이 기존의 소비자 지향 디자인과는 상당히 달라지는 원인이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역량의 차이가 UX디자인이 독립적인 학문이자 분야로서 새롭게 개척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기존의 디자인에서는 디자이너 개인의 영감과 직관을 통해 소비자에게 호소력이 있는 스타일과 특질을 제시하는 부분이 핵심 역량이었습니다. 아름다운 형태를 만들어내는 조형 능력, 트렌드를 읽는 감각, 시각적 임팩트를 전달하는 표현력 등이 중시되었던 것입니다.

반면에 UX디자인에서는 사용자의 관점에서 얼마나 깊이 공감하고 이해하여,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그들의 내면을 정확히 추론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 됩니다. 이는 단순히 ’예쁘게 만드는 능력’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며, 인간의 인지와 행동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필요로 합니다. 1999년 IDEO가 진행한 ‘Reimagining the Shopping Cart’ 프로젝트가 이를 잘 보여주는데,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력을 살펴보면 산업디자이너 및 엔지니어를 포함해 심리학, 건축학, 경영학, 언어학, 생물학 등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하나의 팀을 이루어 쇼핑카트라는 단일 제품을 디자인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의 제품을 디자인하는 데 왜 이렇게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필요할까요. 그것은 사용자를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느 한 분야의 시각만으로는 부족하며, 인간의 경험이라는 복잡한 현상을 다각도에서 조명할 수 있는 다양한 관점과 역량의 동원이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논의를 하나로 모아 정리해보겠습니다. 좋은 UX디자인은 사용자의 인지 과정을 면밀히 관찰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질적인, 혹은 행동적인 문제를 발견하여, 이를 디자인을 통해 사용자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개선시키는 디자인이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사용자가 “무언가 달라졌다”고 의식하기보다는 “왠지 더 편해졌다”, “자연스럽게 잘 된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 좋은 UX디자인이 지향하는 바입니다.

이 글의 시작에서 빌려온 강의 비유를 다시 가져와 마무리하자면, 강의 원류를 찾아 그 수질과 수량을 개선하고 흐르는 길을 세심하게 인도하면 깨끗하면서도 안정적이고 아름다운 강을 볼 수 있듯이, UX디자이너의 역할은 경험의 원류를 찾아 그 흐름을 바꾸는 일입니다. 물론 사용자가 축적해온 거대한 경험의 흐름에 비해, 디자이너가 가하는 개별적인 조정은 처음에는 너무도 미미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한두 가지 인터랙션을 바꾸는 것이 전체 경험을 어떻게 바꿀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어떤 거대한 흐름도 작은 것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강도 결국은 수많은 작은 물줄기가 합쳐져 이루어지듯이, 경험의 세부를 하나하나 바꿔가면 어느 지점에서는 급격히 전체 흐름이 디자인 목표에 가까워지는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 과정을 인내하며, 자신의 직관이나 영감에 의존하기보다 관찰과 공감이라는 무기를 믿고 꾸준히 나아가는 것, 이것이 UX디자이너에게 요구되는 최고의 역량이자 동시에 가장 어려운 숙제이기도 합니다.

경험이 습득의 과정이라는 것을 확인했으니, 다음 글에서는 그 경험을 이루는 구체적인 속성들, 즉 경험을 이루는 여섯 가지 파라미터를 살펴보고 그중 UX디자인이 주로 다루는 파라미터가 무엇인지 짚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