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군주론7편

모든 판단을 자신의 안목으로만 내리는 위험에 대하여 — 내 눈만 믿을 때, 조직은 눈을 감는다

『스타트업 군주론』 2부의 세 번째 이야기. 창업자의 안목은 회사를 여기까지 끌고 온 자산이지만, 모든 판단의 유일한 기준이 되는 순간 조직의 눈을 감기게 합니다. 마키아벨리가 신하의 등용을 군주의 첫 번째 능력으로 꼽은 이유를 빌려 살펴봅니다.

앞 편에서는 지시가 아니라 이해로 조직을 움직이는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맥락을 건네고, 판단의 기준을 나누고, 대표가 보지 않는 자리에서도 사람이 스스로 움직이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까지 온 대표들이 자주 걸려 넘어지는 다음 관문이 있습니다. 맥락은 열심히 나눠주면서도, 정작 결정은 여전히 자기 눈으로만 내리는 것입니다.

창업자의 안목은 회사의 자산입니다. 아무도 보지 못한 기회를 알아봤기 때문에 회사가 시작됐고, 수많은 갈림길에서 그의 판단이 맞았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문제는 바로 그 성공의 기록이 위험한 확신을 만든다는 데 있습니다. “결국 내 판단이 제일 정확하더라.” 이 문장이 조직 안에서 유일한 기준이 되는 순간, 회사는 대표의 시야 크기를 넘어서 자랄 수 없게 됩니다.

결정이 전부 한 사람을 통과하는 회사

증상은 대개 개입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담당자가 정한 것을 대표가 다시 뒤집습니다. 디자인 시안을 최종적으로 고르는 것도, 채용의 마지막 판단도, 문구 하나의 표현까지도 결국 대표의 손을 거칩니다. 대표는 이것을 성실함이라고 여깁니다. 회사의 모든 것에 책임을 지고 있으니 당연하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이 상태가 반복되면 조직에서 일어나는 일은 이렇습니다. 담당자는 점차 자기 판단을 내리는 대신 “대표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를 추측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전문성으로 최선의 안을 만드는 대신, 대표의 취향을 통과할 안을 만듭니다. 회의에서 의견을 말하기보다 대표의 표정을 봅니다. 겉으로 조직은 조용하고 효율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모두가 눈을 감고 대표 한 사람의 눈만 뜨고 있는 상태입니다.

여기서 가장 뼈아픈 대목은, 대표가 뽑은 사람들이 대개 자기보다 그 분야를 더 잘 아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비싼 값을 치르고 전문가를 데려와서는, 정작 그 전문성이 발휘될 자리마다 자기 판단으로 덮어씁니다. 회사는 열 사람의 안목을 가질 수 있었는데 여전히 한 사람의 안목으로 굴러갑니다.

마키아벨리가 신하를 보는 눈

『군주론』에서 마키아벨리는 군주의 능력을 가늠하는 첫 번째 척도로 그가 곁에 누구를 두었는가를 꼽습니다. 신하가 유능하고 충직하면 그 군주는 현명한 사람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데, 사람을 알아보고 그 능력을 유지시켰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곁에 있는 사람들이 무능하다면, 군주에 대한 평가는 거기서 이미 내려집니다. 그 선택 자체가 첫 번째 실책이기 때문입니다.

주목할 것은 마키아벨리가 지성을 세 종류로 나눈 대목입니다. 스스로 이해하는 지성, 남이 이해한 것을 알아보는 지성, 그리고 스스로도 남을 통해서도 이해하지 못하는 지성. 그는 첫 번째가 가장 뛰어나고 두 번째가 그다음이며 세 번째는 쓸모없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두 번째가 무능이 아니라 훌륭함의 범주에 들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것을 혼자 꿰뚫어 보지 못해도, 남이 옳게 본 것을 알아보고 채택할 줄 안다면 그 군주는 충분히 유능합니다.

이 구분이 창업자에게 던지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지금 첫 번째 지성이 되려고 애쓰다가, 정작 두 번째 지성을 발휘할 기회마저 스스로 닫고 있는 것은 아닌가. 모든 것을 내가 가장 잘 봐야 한다는 강박은 종종 남이 더 잘 본 것을 알아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안목은 자산이지만, 유일한 기준일 때 부채가 된다

오해를 피해야 합니다. 이 이야기는 대표가 판단을 내려놓고 모든 것을 다수결에 부치라는 뜻이 아닙니다. 회사의 방향,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 어디에 자원을 걸 것인가 같은 결정은 여전히 대표의 몫입니다. 3편에서 본 것처럼 남의 힘에 기대는 회사가 위태로운 것과 같은 이치로, 대표가 자기 판단을 포기한 회사도 방향을 잃습니다.

구분해야 할 것은 판단의 권한이 아니라 판단의 재료입니다. 위험한 것은 대표가 결정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결정이 오직 자기 눈에서만 나온 재료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자기 안목만이 유일한 입력값인 회사는 대표가 아는 만큼만 알고, 대표가 보는 곳만 봅니다. 대표가 틀린 날에는 그 틀림을 잡아줄 장치가 조직 안에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확신은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집니다. 대표의 판단이 계속 채택되고 그 결과가 나쁘지 않았다면, 그것은 대표가 옳았다는 증거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애초에 다른 판단이 시도된 적이 없다면, 그 기록은 대표의 안목이 옳았다는 증거가 아니라 다른 안목이 시도될 기회가 없었다는 기록일 뿐입니다.

눈을 하나 더 뜨게 하는 일

방법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결정의 순간에 자기 판단을 먼저 말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대표가 먼저 결론을 꺼내는 순간, 그 자리의 논의는 이미 대표의 안을 검증하는 자리로 좁아집니다. 담당자의 안을 먼저 듣고, 그가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를 묻고, 그 근거가 자기 것보다 나은지를 따지는 순서가 되어야 합니다.

되돌릴 수 있는 결정과 되돌릴 수 없는 결정을 갈라두는 것도 방법입니다. 되돌릴 수 있는 일이라면 대표의 안목과 다르더라도 담당자의 판단대로 가보게 두는 편이 낫습니다. 조직이 자기 판단으로 결정하고 그 결과를 확인하는 경험을 쌓지 못하면, 판단할 줄 아는 사람은 영영 늘지 않습니다. 대표의 안목이 반드시 관철되어야 하는 자리는 생각보다 적습니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자기 판단이 틀렸음을 확인하는 경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대표가 자기 안이 밀린 자리에서 불편해하는 기색을 한 번 보이면, 조직은 그것을 정확히 읽고 다시 눈을 감습니다. 반대로 대표가 “그 판단이 내 것보다 낫다”고 말하는 장면을 한 번 보여주면, 그때부터 사람들은 자기 눈으로 보기 시작합니다. 마키아벨리의 표현을 빌리면, 그것이 두 번째 지성—남이 옳게 본 것을 알아보는 능력—이 조직 안에서 작동하기 시작하는 순간입니다.

점검할 질문은 단순합니다. 최근 한 달 동안, 내 판단이 아니라 구성원의 판단대로 간 결정이 몇 개나 있었는가.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면, 조직은 지금 눈을 감고 있는 중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 문제의 다른 얼굴을 다룹니다. 대표가 아무리 남의 눈을 빌리려 해도, 그에게 도달하는 정보 자체가 이미 걸러지고 다듬어진 것이라면 어떻게 될까요. 나쁜 소식이 대표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조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