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is Speculative Design3편

미래에 대한 사실 판단과 가치 판단

스페큘러티브 디자인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미래의 고깔은 원래 미래학의 도구였습니다. 도표의 내력을 따라가며 '선호되는 미래'가 다른 범주와 어떻게 다른지 살펴봅니다.

이 시리즈의 첫 글에서 미래의 고깔을 소개했습니다. 현재에서 뻗어 나가는 미래를 유망한(Probable), 그럴듯한(Plausible), 가능성이 있는(Possible) 미래로 나누고, 그중 선호되는(Preferred) 미래로 나아가자고 제안하는 도표였지요. 스페큘러티브 디자인을 설명하는 자료라면 거의 빠지지 않는 그림이기도 합니다.

이 도표는 디자이너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미래학(Futures Studies)에서 먼저 쓰던 도구이고, 그 내력을 살펴보면 첫 글에서 간단히 지나갔던 부분을 조금 더 정확하게 다시 쓸 수 있습니다.

미래의 고깔, 그 내력

호주의 미래학자 조지프 보로스(Joseph Voros)가 정리한 내력에 따르면, 1978년 노먼 헨치(Norman Henchey)는 미래를 가능한, 그럴듯한, 유망한, 선호되는 미래의 네 가지로 나누었습니다. 1990년에는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가 시간 축 위에서 범위가 넓어지는 ‘그럴듯함의 고깔(Cone of Plausibility)‘을 더했습니다. 우리가 아는 형태에 가까운 그림은 1994년 트레버 핸콕(Trevor Hancock)과 클레멘트 베졸드(Clement Bezold)가 헨치의 분류를 고깔로 옮기면서 나옵니다. 보로스는 2000년 무렵부터 이를 자신의 포사이트 작업에 쓰기 시작해 범주를 더 늘려 나갔습니다. 이렇게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며 우리가 아는 고깔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현재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넓어지는 고깔 도표. 가운데 선이 예상되는 미래이고, 안쪽부터 유망한, 그럴듯한, 가능한, 터무니없는 미래로 나뉜다. 선호되는 미래는 여러 구역에 흩어진 점들로 표시되어 있다.

Hancock & Bezold(1994)와 Joseph Voros의 도표를 바탕으로 다시 그린 미래의 고깔

얼마나 그럴 법한가

위를 토대로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도식의 정체가 분명히 드러납니다.

  • 예상되는(Projected): 지금까지의 흐름을 그대로 연장한, 현 시점에서 그대로 예측되는, 이른바 기본값 미래입니다.
  • 유망한(Probable): 변화 없이도 일어날 ‘법한’ 미래입니다. 주로 현재의 추세를 근거로 삼습니다.
  • 그럴듯한(Plausible): 지금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에 비추어 일어날 ‘수 있는’ 미래입니다.
  • 가능한(Possible): 아직 우리에게 없는 지식에 따라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미래입니다.
  • 터무니없는(Preposterous):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미래입니다.

안쪽으로 갈수록 현 시점의 추세에서 확실한 편이고 바깥으로 갈수록 확률이 낮아 보이는 미래가 됩니다. 이 다섯 범주는 결국 우리가 어떤 미래가 얼마나 그럴듯한지를 두고 구분하는 것이 됩니다.

주의할 점은 이 판단 역시 지금의 우리가 내리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어느 시대의 터무니없는 미래가 다음 시대의 일상이 되는 일은 드물지 않습니다. 그러니 고깔의 경계는 세계의 객관적인 구획이라기보다 우리 상상력의 현재 위치를 그려 놓은 것에 가깝습니다.

선호는 다른 축에 있다

이제 ‘선호되는 미래’를 볼 차례입니다. 여기서 이 도표의 가장 중요한 지점이 나옵니다. 보로스는 위의 범주들이 대체로 무엇이 일어날 법한지에 대한 인지적 판단인 데 비해, ‘선호되는 미래’는 무엇이 일어나야 하는지에 대한 가치 판단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선호되는 미래는 고깔 안의 특정 구역에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기본값 미래가 가장 좋을 수 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오늘 터무니없어 보이는 미래가 가장 바람직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가치관이 다양한 만큼 선호는 고깔 전체에 걸쳐 나타날 수 있는 것이지요. 그 반대편에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미래도 있습니다.

시리즈 첫 글에서 개념을 다루면서 컨셉 디자인은 현실에 나타날 가능성에 방점을 찍는 반면, 스페큘러티브 디자인은 선호되는(Preferred) 미래를 이끄는 것으로 설명한 바 있습니다. 이 설명만으로는 그 구분이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이 글에서 다룬 두 가지 축으로 대비해보면 차이가 분명해집니다: 하나는 가능성(Probability)의 축 위에 있고 다른 하나는 가치의 축 위에 있으니, 현재를 통해 미래를 보여준다는 점이 비슷하게 여겨질 수 있지만 분명히 다른 목적과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달라지는 것

이 구분은 말장난처럼 보이지만 실무적인 차이를 만듭니다. 미래를 이야기하는 회의에서 ‘이건 될 것 같다’와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쉽게 뒤섞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모든 상담은 AI가 맡게 될 겁니다’라는 문장은 전망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그렇게 되는 것이 좋다는 판단이 슬며시 함께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망의 형식을 빌리면 가치 판단은 토론 없이 통과합니다. 이미 정해진 일은 찬성과 반대의 대상이 아니라, 디자인의 전제, 환경이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미래의 고깔은 두 질문을 분리하게 해 줍니다. 그것은 얼마나 일어날 법한가. 그리고 별개로, 그것은 일어나야 하는가. 가능성이 낮아도 추구할 미래가 있고, 가능성이 높아도 막아야 할 미래가 있습니다. 스페큘러티브 디자인이 고깔의 바깥쪽을 자주 드나드는 것은 황당함을 즐겨서가 아니라, 기본값이 유일한 미래처럼 보이는 착시를 깨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어떻게 사람들 앞에 실감 나게 꺼내 놓을 수 있을까요. 다음 글에서는 그 방법으로 자주 쓰이는 디자인 픽션을 살펴봅니다.

참고한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