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은 인지의 소용돌이다 — 보이지 않는 것을 관찰하는 법
사용자의 인지는 직접 들여다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지가 어긋나는 지점에서 사용자는 반드시 평소와 다른 행동을 보입니다. 쇼핑몰 엘리베이터와 편의점 우유 사례로 행동 관찰이 UX디자인의 출발점인 이유를 살펴봅니다.
물이 부드럽게 흘러가다가 어디선가 소용돌이친다면, 분명 그 밑에 물의 흐름을 방해하는 지형지물이 있어서 겉과 속의 흐름이 달라지고, 그것이 소용돌이라는 형태로 드러나는 것일 겁니다. 수면 위에서는 그저 물이 빙글빙글 도는 것만 보이지만, 그 원인은 반드시 수면 아래 어딘가에 존재합니다.
이 시리즈에서 사용자 경험을 물에 빗댄 비유를 다시 빌려오자면, 이 소용돌이가 바로 사용자가 보이는 특이한 행동입니다. 경험의 흐름 속에 매끄럽지 않은 지점이 있을 때, 사용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평소와 다른 행동을 보이게 되고, 그 행동이야말로 문제의 존재를 알려주는 가장 확실한 신호가 됩니다.
물 밑을 직접 들여다보기는 어렵지만, 물의 소용돌이를 찾기는 쉽습니다. 마찬가지로 사용자의 인지를 직접 들여다보기는 어렵지만, 행동을 관찰하기는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바로 이 점이, 사용자 경험 디자인에서 행동의 관찰이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입니다.
행동이란 무엇인가 — 무의식이 드러나는 방식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행동’이란 정확히 무엇일까요? 행동(Behavior)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움직임을 말합니다. 의식적으로 선택하고 실행하는 행위(Activity)와 달리, 행동은 스스로 자각하지 못한 채 자연스럽게 취하는 동작이나 반응에 가깝습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겉으로 보이는 의식적인 인지에 비해, 무의식적인 인지가 경험을 형성하는 데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끼칩니다. 일상에서 내리는 수많은 판단과 선택의 대부분은 의식의 수면 아래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의식적으로 행하는 행위(Activity)에 비해, 무의식적인 행동(Behavior)을 관찰하는 것은 사용자 경험을 이해하는 데 있어 훨씬 더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행동의 관찰이 중요한 이유는 이러한 양적인 비중의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사용자가 의식적으로 느끼는 문제들, 예를 들어 “이 버튼이 너무 작다”거나 “로딩이 느리다”와 같은 불편은 설문이나 인터뷰를 통해 비교적 쉽게 보고됩니다.
그러나 무의식의 영역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은 사용자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질문을 던져도 잘 응답되지 않습니다. 응답되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문제로 인식되지도, 따라서 해결되지도 않습니다. 사용자가 “왜 불편한지 모르겠는데 뭔가 불편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바로 이러한 무의식적 인지 문제가 작동하고 있는 경우이며, 이런 문제를 포착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경로가 바로 행동에 대한 관찰입니다.
쇼핑몰의 엘리베이터, 사라진 동선의 의미
구체적인 예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어떤 쇼핑몰을 개점했는데, 이상하게 사용자들의 동선을 파악해보니 특정한 한 곳에서 빙빙 돌거나 잠시 멈칫하며 망설이는 모습이 반복적으로 잡혔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그 구역에 흥미로운 매장이 있어서 머무는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동선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좀 더 면밀히 분석해보니, 엘리베이터를 찾는 사람들이 해당 지역을 한번씩 갔다가 엘리베이터를 발견하지 못하고 되돌아오는 모습으로 관찰되었다고 해보겠습니다.
이 반복적인 행동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사용자들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 장소에 엘리베이터가 있을 것이라 기대했고, 그 기대가 어긋나면서 혼란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억, 위치, 지시, 분위기, 색상 등 다양한 단서로 시공간의 성격을 파악하고 행동합니다. 그 원인 역시 다양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다른 쇼핑몰들에서는 일반적으로 그 위치에 엘리베이터가 있는 경우가 많아서, 사용자들이 과거의 경험을 기반으로 이곳에서도 같은 위치에 엘리베이터가 있을 것이라 짐작한 것일 수 있습니다.
또는 복도 앞에 놓인 정수기와 소파가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엘리베이터가 있을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을 수도 있습니다. 혹은 엘리베이터 앞에 흔히 위치하는 특정 종류의 브랜드들이 그 근처에 입점해 있어서, 사용자들이 무의식적으로 “이 브랜드가 있으니 엘리베이터도 근처에 있겠지”라고 오해했을 수도 있습니다.
주목할 점은, 이 모든 판단이 의식적인 사고의 산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지시적인 표지판만을 읽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공간의 형태, 사물의 배치, 분위기, 기억 등 다양한 정보를 종합적으로 얻고 미루어 짐작하는 식으로 인지적인 낭비를 줄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짐작은 맞아떨어지지만, 그 짐작의 근거가 되는 환경적 단서들이 실제와 어긋날 때 행동에 오류가 발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해결책은 표지판이 아니라 환경입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이미 지어진 건물에서 엘리베이터의 위치 자체를 바꾸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 장소가 엘리베이터 공간처럼 인식되지 않도록, 사용자의 무의식적 판단에 영향을 주는 환경적 요소들을 재구성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복도의 형태를 변경하거나, 오해를 유발하는 사물의 배치를 바꾸거나, 공간의 분위기를 전환하거나, 동선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실제 엘리베이터 방향으로 유도하거나, 매장을 재배치하는 등 원인에 따라 다양한 해결책이 존재할 것입니다.
이러한 접근들이 모두 실패하면 결국 큼지막한 표지판이나 입간판이 들어서게 되는데, 이는 가장 마지막에 써야 하는 해결책입니다. 표지판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에게 의식적인 인지 부담을 추가로 지우는 것이기에, 사용자 경험 디자인의 관점에서 가장 하책(下策)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추단(휴리스틱)과 편의점에서 우유를 찾는 법
앞서 쇼핑몰 예시에서 사용자들이 다양한 단서를 종합하여 무의식적으로 판단을 내리는 모습을 살펴보았는데, 이러한 짐작을 통한 인지처리 방식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이를 추단(휴리스틱; Heuristic)이라고 합니다. 모든 정보를 꼼꼼히 검토하지 않고 정보의 양을 대폭 줄여 빠르게 결정할 수 있도록 돕는 인지적 장치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경우 이 휴리스틱은 꼭 필요한 인지적 절약책으로 작동합니다. 만약 우리가 매 순간 모든 정보를 의식적으로 처리해야 한다면, 아무리 간단한 일상적 행동도 엄청난 인지적 에너지를 소모하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처음 간 편의점에서도 우유를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은 그 편의점에서 우유의 위치를 특별히 안내받아서가 아닙니다. 우유는 으레 냉장 코너의 어떠한 위치에, 어떠한 분위기 속에 진열되어 있다는 과거의 기억과 경험적인 판단, 즉 일종의 멘탈모델을 통해 무의식중에 발걸음이 향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물리적 공간뿐 아니라 디지털 환경에서도 다양한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접하면서 이러한 종류의 인터랙션을 수도 없이 반복합니다. 그리고 이 자동적인 행동과 기대한 결과 사이의 연계가 원활하게 이어질 때 경험은 매끄럽게 흘러가지만, 그 연계가 깨졌을 때 비로소 인지적인 검토와 수정의 요구가 생기게 됩니다.
흐름을 끊는 것도 디자인입니다 — 의도된 마찰
흥미로운 점은, 이 자동적인 흐름과 의식적 검토 사이의 간극(chasm)조차도 때로는 의도된 사용자 경험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중요한 정보에 사용자의 집중을 요구하고, 그 정보에 대해서는 무의식적인 행동의 흐름대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인 검토가 반드시 필요하다면, 오히려 행동의 흐름에 의도적으로 방해를 가함으로써 사용자의 집중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금융 서비스에서 중요한 약관 동의 전에 일부러 스크롤을 요구하거나, 되돌릴 수 없는 작업 전에 확인 단계를 추가하는 것이 그런 예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접근은 매우 이례적이고 신중하게 사용되어야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사용자 경험 디자인은 자연스러운 경험의 흐름, 행동의 흐름을 유도하는 방향을 지향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간극이 의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어나고 있다면, 그것은 사용자 경험을 저해하는 물 밑의 바윗덩어리 같은 요인으로 여겨져야 합니다. 처음에 이야기했던 비유로 돌아가자면, 원치 않는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소용돌이인 셈입니다.
행동은 인지로 들어가는 유일한 창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해보겠습니다. 지난 글에서 사용자 경험 디자인은 ‘사용자 인지에 대한 디자인’임을 명시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거듭 이야기되듯이 인지는 우리가 직접적으로 관찰하고 교정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인지는 사용자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내적 과정이기에, 우리는 사용자가 사물에 대한 인지를 통해 겉으로 표현하는 ‘행동’을 관찰하여 그 인지를 추론할 수밖에 없습니다. 쇼핑몰에서 빙빙 도는 사람들의 동선을 통해 공간 인지의 문제를 파악했듯이, 행동이야말로 인지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인 셈입니다.
또한 사용자 경험 디자인을 통해 사물을 교정하면 사용자는 그 교정된 사물을 새롭게 인지하게 되고, 역시 그 인지의 결과를 행동으로 표출하게 됩니다. 디자이너가 자신의 디자인이 의도한 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사용자 경험이 실제로 개선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것도 결국 이 행동을 통해서 유추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 사용자 경험 디자인의 전 과정은 행동으로 시작해 행동으로 끝나는 셈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앞으로 이 시리즈에서 다룰 ‘UX디자인 기법’들은 행동을 관찰하고 그것을 분석하는 데 많은 초점을 두게 됩니다. 경험을 디자인한다, 또는 행동을 관찰하고 인지를 유추한다는 것은 개념적으로는 이해가 되어도, 막상 실무에서 실행하려고 하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게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어떤 행동을 관찰해야 하는지, 그 행동에서 어떤 인지적 의미를 읽어내야 하는지, 그리고 그 해석을 어떻게 디자인의 개선으로 연결해야 하는지가 모두 구체적인 방법론을 필요로 합니다. UX디자인 기법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체계적인 절차와 사고의 틀을 제시하며, 사용자 경험 디자인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사용자 인지의 교정이라는 목표에 한 걸음씩 다가갈 수 있도록 돕습니다.
지금까지 UX디자인이 무엇이고, 경험이 어떤 원리로 형성되며, 인지와 행동이 그 안에서 각각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경험의 뿌리에는 인지가 있고, 그 인지는 행동이라는 창을 통해서만 관찰할 수 있으며, 디자인의 결과 또한 행동을 통해 검증된다는 것이 지금까지 이야기의 골자였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인지, 행동과 더불어 경험을 구성하는 또 하나의 축인 감성(Emotion)을 다룹니다. 전통적인 디자인에서부터 다루어져 온 만큼 익숙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여전히 강력하고 독자적인 UX디자인 파라미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