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큘러티브 디자인(Speculative Design)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디자인(Design)'이라는 개념은 처음에 공예(Craft)로부터 출발했다고 여겨지는데요, 공산품에 예술을 더하는 공예의 개념에서 점차 공산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예술을 생각하는 식으로 분화되어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식으로 무언가의 공정에서 그 목적과 효율성에 맞춰 기획하고 조율하는 것으로 의미가 확장되어 오던 '디자인'에 추측, 전망을 뜻하는 '스페큘레이션(Speculation)'이 붙은 것이지요.
즉, 미래를 예측하고 전망하는 디자인을 뜻하는 개념인데, 사실 이 자체는 '디자인'이라는 개념에는 자연스럽습니다. 디자인은 원래 그 목적물의 사용자와 사용환경을 예측하고 사용 목적에 맞춰 효율화된 형태를 제공해왔기 때문이죠. 단편적으로 생각하면, 모든 디자인은 예측과 전망을 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특별히 이러한 용어가 생겨난 배경과 그 말이 설명하는 색다른 개념이 무엇인지가 궁금한데요, 스페큘러티브 디자인은 단순히 어떤 디자인 목적물의 공정에서의 예측을 넘어, 보다 사회적이고 거시적인 관점을 지닌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전의 디자인이 제품이나 서비스, 기업 등 특정 목적물에 대해서 고민하고 그 미래에 대한 예견적 성격을 통해 목표에 맞는 최적의 형태를 제안해왔다면 스페큘러티브 디자인은 사회와 시대 전반을 디자인 목적물로 두고 우리에게 주어진 기술과 환경 속에서 우리 사회 전체가 나아갈 더 나은 길을 예견하는 디자인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스페큘러티브 디자인에서 많이 다뤄지곤 하는 발생 가능성의 고깔(Cone of Possibility)은 이를 시각적으로 설명하는 좋은 도표인데, 우리의 현재에서 발생 가능한 전체 미래를 두고 그 가능성에 따라 유망한(Probable) 미래와 그럴듯한(Pluasible) 미래, 그리고 가능성이 있는(Possible) 미래로 구분한 뒤 이들 중 선호되는(Preferred) 미래로 나아가도록 제안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기존에도 컨셉 디자인(Conceptual Design)이라고 해서 비슷하게 상상력의 사물을 제시하는 디자인 분야가 있었지만 스페큘러티브 디자인이 이와 구별되는 점은 컨셉디자인은 어디까지나 현실에 방점을 찍고 다가오는 근미래에서의 새로운 제품 및 서비스의 사용성을 제시하는 측면에 그쳤다면(Probable), 스페큘러티브 디자인은 선도적으로 미래의 비전과 우리가 나아가야할 길을 제시하고 이끄는 측면(Preferred)이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즉, 현실의 결과로서의 미래를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통해 나아갈 수 있는, 더 개선된 미래를 디자인하는 것이 주요한 차별점이라고 봅니다.
보통 우리는 미래를 어둡고 막막한 디스토피아(Distopia)로 조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우리가 어려움을 더 크게 느끼며, 부정적인 자극에 더 강하게 반응하도록 조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전망이론: Prospect Theory) 하지만 디자인은 언제나 그 인간의 본성을 이겨내고 주어진 조건과 목표 속에서 가장 최적의 결과를 찾아왔습니다.
스페큘러티브 디자인 역시, 우리가 가진 조건들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그 속에서 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 그리고 가장 선호될 미래를 찾는데 그 의의가 있습니다. 또한, '베풀장'이 추구하는 디자인 방향 역시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유토피아의 실마리를 찾는 것이지요. 단 하나의 가장 이상적인 미래를 말입니다.
'미래를 디자인하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왜 우리는 사변(思辨)해야 하는가 (1) | 2024.07.19 |
---|